‘고난의 행군’은 1990년대 중후반 북한 전역을 휩쓴 극심한 경제난과 대규모 아사 사태를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이 시기는 북한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비극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오늘날의 북한 사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 글에서는 북한 고난의 행군의 정확한 의미와 시기, 그리고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한 원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고난의 행군 뜻: 항일투쟁에서 경제난으로
원래 고난의 행군 뜻은 김일성이 1930년대 말 만주에서 항일 유격대 활동을 할 당시 겪었던 극심한 고난을 이겨냈다는 일화에서 유래한 선전용어였습니다. 북한 정권은 이를 체제 선전에 활용하며 주민들에게 어려움을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최악의 식량난이 닥치자, 이 용어는 수백만 명의 아사자를 낳은 비극적인 시대를 상징하는 단어로 그 의미가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 1990년대 중후반의 비극
고난의 행군 시기는 일반적으로 김일성 사망 직후인 1994년부터 1999년까지의 기간을 말합니다. 특히 1995년부터 1998년까지 4년간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북한의 국가 배급 시스템은 완전히 붕괴되었고,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각자도생해야 하는 처절한 상황에 내몰렸습니다.
고난의 행군 원인: 복합적 재앙의 결과
고난의 행군 원인은 어느 한 가지로 단정할 수 없으며, 대내외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 사회주의권의 붕괴: 가장 결정적인 외부 요인은 1991년 소련의 붕괴와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몰락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북한은 우방국으로부터 받던 경제 원조와 값싼 원자재 공급이 하루아침에 중단되었습니다.
- 경제 정책 실패: 자립 경제를 명분으로 한 비효율적인 중공업 우선 정책과 경직된 계획 경제는 외부 충격에 대응할 능력을 상실하게 만들었습니다.
- 연이은 자연재해: 1995년과 1996년, 대규모 홍수가 연이어 발생하여 북한의 주요 곡창지대가 초토화되었습니다. 이는 가뜩이나 취약했던 식량 생산 기반을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북한 고난의 행군이 남긴 것
고난의 행군 북한 사회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변화를 남겼습니다.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이 기간 동안 최소 수십만에서 많게는 300만 명에 이르는 주민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국가의 배급 시스템이 붕괴하자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장마당’이라는 비공식 시장을 만들어냈고, 이는 북한 사회에 시장 경제의 개념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극심한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수많은 탈북자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고난의 행군은 북한 정권의 구조적 모순과 실패가 빚어낸 참사였습니다. 이 끔찍한 비극은 북한 주민들의 삶과 가치관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북한의 현재를 이해하는 중요한 역사적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